진화론은 계속해서 질서가 잡혀가고 있는 우주, 발전적인 우주를 가정하고 있다. 제일 처음 대폭발에 의해서 우주가 만들어질 때는 사실상 가장 무질서한 상태였다. 그런데 200억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은하단, 은하계, 태양계, 지구라는 식으로 질서가 잡혀가는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열역학의 법칙들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 주장일까? 과연 열역학의 법칙은 우리에게 어떤 우주를 말해주고 있고, 그것은 창조주에 대해서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열역학의 3법칙들 가운데서 오늘의 논의에 필요한 것은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라고 불리우는 제1법칙과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불리우는 제2법칙이다. 이 두 법칙을 합쳐서 한마디로 묘사해 본다면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데 비해서, 시간이 경과하면서 사용가능한 에너지, 즉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모두 일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질서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에너지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더 이상 창조되지 않고 있는 우주의 에너지가 계속해서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고 있다고 열역학의 법칙이 말하는 바는 진화론의 질서를 증가라는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적 사고는 가장 기본적인 과학의 법칙과 근본적으로 어긋나고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 우리가 늘상 경험하듯이 인간이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어떠한 건축물이나 기계들을 보더라도 계속 공을 들여 유지 보수를 하지 않는한 자꾸 낡아지고 부숴지고 무질서해지는 것이 법칙이다. 그래서 방치해 두는데 점점 질서가 잡히고 새로워지고 정교해지는 것은 이 세상에 결코 없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지배하는 것이 열역학의 제2법칙이다. 자연의 모든 과정은 엔트로피라는 열역학적인 양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엔트로피의 법칙은 에너지의 투입에 의하여 부분적으로는 역전될 수도 있다. 바로 생명체가 성장하며 생명체 내부의 질서를 유지해 가는 과정에서 그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생명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와 물질을 공급받음으로써 그를 희생으로 삼아서 자신의 내부적 질서를 유지 발전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주변의 에너지와 물질이 생명체 내부로 빼앗김으로 생기는 엔트로피의 증가는 생명체 내부에서의 엔트로피 감소분보다 훨씬 커서 거시적으로 보면 열역학 제2법칙은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생명체에서처럼 그 에너지를 적절하게 일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어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그러한 식의 에너지 투입은 오히려 더 큰 무질서를 산출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어떤 건물에 폭탄이 떨어졌을 경우 매우 많은 양의 에너지가 건물에 주어지는 것이지만, 실상은 폭발의 결과 그 건물은 엄청나게 더 무질서한 상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대폭발 이론이라는 것은 폭발이 있어났는데, 거기서 지금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의 폭발이 일어났던 우주에 질서를 산출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변환장치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는 어떤 인쇄소에서 폭탄이 터진 결과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 완벽하게 인쇄되어 제본되어 나왔다고 설명하는 것 만큼이나 불합리한 이론이다.
결국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피해가기 위해서 우주 자체에 생명과 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즉 '자기-조직하고 있는 우주'라는 용어로서 우주 자체는 자율적이고 자충족인 힘이 있어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바로 우주라는 물질계 자체에다 신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주 자체가 영원히 존재하며,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자기를 창조적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바로 신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피조물에 불한 우주를 신격화하고 있으니 우상숭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열역학의 두 법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 없이는 이 우주의 존재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의 에너지는 결코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있고, 그 에너지들이 점차로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결국 최초에 에너지가 창조되었을 때 모든 에너지가 쓸모있는 에너지였던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우주는 영원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분명히 시작이 있었고, 그 시작을 가능케한 창조주의 창조행위가 없이는 열역학의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지금의 우주의 존재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그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는 열역학적인 평형상태, 즉 열역학적인 죽음의 상태를 향해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이 우주에 시작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만큼,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우주 역사의 끝이 도래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한 셈이다. 이러한 상태를 다시 영원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뿐이다.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진화론적인 사고에서는 엄연히 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열역학의 법칙을 왜곡되게 해석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이 우주를 신격화하고 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알파와 오메가, 즉 역사의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써 열역학의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는 에너지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여 사용해 왔다. 석기시대의 발달한 사냥 기술이 수렵자원의 고갈을 초래하자, 농경문화와 이에 적합한 효율적인 에너지 기구인 신석기 시대를 낳았다. 로마시대에는 정복을 통해 획득한 막대한 잉여 에너지인 노예들의 육체노동력의 한계가 오자, 수력을 이용한 분쇄 기술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활용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난방으로 사용하던 목재 에너지의 고갈을 경험한다. 영국 등지에서 땅속의 검은흙을 연료로 사용하게 되고, 시기 적절하게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다. 이제 인류는 땅속에 간직되어 있던 화석연료의 고갈과 이들 사용으로 인한 환경의 악화의 이중고를 겪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물질에서 바로 에너지를 획득하는 핵에너지의 사용은 방사능이라는 위험요소를 던져주고 있다.
현재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고대시대의 80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살던 귀족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과소비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에너지 문제는 소수의 과학자 집단에서 논의되는 고유한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에너지의 기본법칙
열로부터 유용한 일을 얻어내고자 하는 노력은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 1법칙의 장미빛 향기를 맡으며 끊임없이 시도되었으나,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 늘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공학은 한마디로 열적 자원을 개발하고, 유용한 일을 얻어내는 기구를 개발하되 이를 극대화하며 환경오염이 되는 엔트로피의 발생을 극소화하고자 하는 공학이다. 이 공학의 한 끝자락은 오늘날의 고도 문명사회를 유지하는데 절대 필요한 유용한 일의 개발이라는 실용적인 부분에 걸쳐 있으나, 다른 한 끝자락은 질서와 무질서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 부분은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 등장하여 진화론을 궁지에 빠지게 하던 아주 믿음직한 이론이었다.
질서와 무질서
우리의 언어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표현하면, 어떻게 무질서에서 질서가 나왔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인류가 알고자하는 고상한 몇 안 되는 문제중에 지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보이는 생물계의 질서를 논하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를 떠나서도, 우리는 종종 창틀에 낀 성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양, 들의 꽃, 가뭄 때 갈라진 논바닥의 균열, 마구잡이로 종이를 꾸겨 놓은 듯한 산하(山河)의 뻗어 달림, 가을 하늘에 촘촘히 흩뿌려진 새털구름 등을 바라보면서도 질서와 무질서를 생각하게 되고 시민들은 노래할 것이다.
최근, 과학의 발달은 질서와 무질서의 해석이라는 명제에 드디어 발을 딛기 시작했다. 기상학자인 로렌츠가 발견한 대기순환의 간단한 비선형 동역학 방정식이 보여주는 혼돈(chaos)의 해석을 통해, 기묘한 끌개(strange attractor)의 해석은 결정론적 혼돈이라는 개념을 던져 주었다. 우리가 경험한 많은 종류의 혼돈 중에 상당수가 그 배후에 매우 간단한 결정론적인 지배 방정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사실 뉴튼 역학 이후의 결정론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존재를 초기조건으로 제한하는 오류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chaos의 특징인 '재빠른 초기조건의 망각'은 초기로 제한된 하나님을 재빨리 망각하는 자연을 묘사하여 지극히 위험한 세계관을 던져줄 소지가 있다.
또 다른 도전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으로 대표되는 브뤼쉘 연구소팀의 주장인 자기조직(Self organization)에 관한 연구이다. 이들은 선형열역학에서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무질서의 증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들 연구가 완벽한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들을 조합하면 지극히 진화론적인 사고의 일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간섭하시는 하나님
위의 사고과정에 하나님의 설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대류 운동을 보기를 들자. 이것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도 즐겨 그의 이론에 예로 드는 것이다. 아침마다 커피물을 덮히다 보면 물이 빙빙 도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대류이다. 물이라는 분자는 지능이 없으므로 협동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열이 가해지면 제멋대로 충돌할 것이다. 이러한 멋대로 충돌에 의한 에너지의 전달을 전도(conduction)이라 부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도는 혼돈의 상태이고 대류는 질서의 상태이다. 왜냐하면 우리 육안으로 흐름을 관찰하려면 적어도 1몰 정도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능없는 1몰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할 확률은 1 / 6.023×1023 이다. 따라서 이것은 기적이다. 우리는 매일아침 기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이 거의 0의 확률을 1의 확률로 바꾸었을까? 그것은 물분자 하나하나에 간섭한 중력이다. 이 간섭자로 말미암아 물분자는 멋대로 충돌하기 보다 단체행동을 한 것이다.
최근 Yorke 등의 과학자는 혼돈을 제시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것은 미래 계통공학(system engineering)에 큰 공헌을 할 것이 기대된다. 혼돈을 간직한 계통을 설계하고 이를 제어하므로, 하나의 계통에서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어라는 것은 목표치와 현 상태의 오차를 감지하고 이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행동이다. 즉 끊임없는 간섭이 혼돈계를 질서계로 바꾸어 준다. 일리아 프리고진은 자신의 이론에 제시한 비평형 엔트로피의 작용을 이 혼돈의 제어라는 언어로 다시 표현해야 마땅하다.
제어를 하고자 하는 경우, 원하는 목표치(최적상태)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간섭해야 한다. 따라서 혼돈에서 질서의 창출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즉, 질서의 상태를 설계하셨고 이것이 혼돈으로 갖지 않도록 끊임없이 간섭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유용한 일의 획득
문제를 돌려서,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 문제인 유용한 일의 획득이라는 공학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에너지 변환 시에 우리는 엔트로피를 발생시키게 되고, 이것은 지구환경을 심히 훼손시킨다. 따라서 에너지 소비절약과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 개발이 급선무이다.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는 결국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의 생산이 작은 방향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큰 영향을 받는다.
에너지 형태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
중 력
회 전 에 너 지
궤 도 운 동 에 너 지
핵 반 응
천 체 의 내 부 열
태 양 관 선
화 학 반 응
지 구 폐 열
마 이 크 로 파 우 주 선
0
0
0
10-6
10-3
1
1-10
10~100
104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중력, 회전에너지, 궤도 운동에너지 등은 엔트로피 생성이 무시할 만 하다. 이 부분은 수력발전의 경우와 같이 중력과 회전에너지의 결합으로 구현되었다. 큰 저수지의 필요로 주변의 기후 변동과 수몰지역 문제가 있고, 거의 개발한 곳을 다 개발한 상태여서 청정에너지의 개발 여지가 많지 않다.
핵반응을 이용한 에너지는 핵분열과 핵융합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안전성의 증대가 관건이 되고 폐기물의 경우는 다른 에너지 변환 장치에 비해 작은 편이다.
태양열의 이용은 경제성 문제가 크고 단위 면적당 에너지 집적률이 낮아,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다. 풍력의 경우 돌풍성 바람에 대한 대책과 회전익에서 발생하는 소음공해 등의 해결이 필요하다. 간략히 살펴보아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미래의 에너지는 중력?회전에너지?궤도 운동에너지가 조합된 특이한 변환장치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궤도 운동의 경우. 이체문제(two-body problem)의 경우는 궤적을 예측할 수 있으나,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만 되어도 질량의 비율에 따라 카오스적 궤도가 형성된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해?달?지구 그리고 그 속에 넣을 에너지 변환기구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이러한 엔트로피의 생성을 최소화하는 기구의 개발과 함께,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가이아 이론과 같이 지구를 숭배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적인 사고를 물리칠 책임 또한 막중하다.
2002년 12월 27일 복제인간이 최초로 탄생했다는 보도는 염려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직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 인간복제가 실현됐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미 기술적으로 인간복제가 가능하다고 예견되어 왔고, 인간복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크로노이드 회사에 의해 인간복제를 성공했다고 발표하였기 때문에, 이런 발표가 인간복제 문제를 확실하게 금지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복제는 난자의 핵을 체세포의 핵으로 바꾸는 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수정란의 형태를 만들고,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동물복제 실험에서 나타났듯이 이런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출산할 수 있는 확률이 낮으며, 출산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인간복제는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시도 자체가 정상적인 가정의 기능을 파괴하고, 인간을 다른 사람의 소유나 이용의 대상이 되어버리게 할 수 있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이다. 또한 인류의 다양성과 독특성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정보를 반반 씩 받아 그 어떤 사람도 갖지 못한 새로운 유전정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데, 복제 방법의 확산은 결혼제도, 가정의 파괴 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 자체에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인간복제는 천부적 인권파괴 내지 인간성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한국창조과학회는 박사 및 대학교수 300명을 포함한 1500여명의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아래와 같이 천명한다.
- 동물실험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복제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인간복제 기술 사용을 전면 금지하도록록 촉구한다.
- 정부는 하루 빨리 인간복제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생명윤리법' 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97년 봄, 영국 로슬린연구소에서 이안 윌멋 박사에 의해 돌리라는 양이 처음 복제된 이후 인간복제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8월 23일 과학자들이 인간의 수정란을 연구하는데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새로운 인간배아세포복제 연구지침을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선천적 기형과 파킨슨병, 각종 암과 당뇨병 환자들이 이 연구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며 새 기준은 시험관수정을 통해 얻은 배아에 한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영국정부는 그보다 앞선 8월 16일 의학연구 목적에 한해 수정 후 14일 이내의 초기 인간배아를 복제하는 치료용 복제연구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98년 서울대 황우석교수에 의해 송아지 영롱이가 복제되면서 동물복제가 본격화되었고,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경희의대에서 초기인간복제실험이 성공되었다는 보고로 전 세계적인 논란을 야기시켰고, 라엘리언 교도들이 강남에 사무실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인간복제신청을 접수하여 현재 9명의 한국인이 이미 복제신청을 마치고 조만간 인간복제에 들어가겠다는 보도를 접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인간복제논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황우석교수가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복제를 통해 특허를 출원한 사실이 보도되었고, 마리아불임클리닉의 연구소가 시험관아기 시술에 사용되고 남은 냉동배아를 이용하여 배아간세포를 분리하였다는 뉴스는 인간배아복제 논쟁을 더 뜨겁게 가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제기술은 세계 5위권 안에 이미 들어섰으며, 이와 유관된 불임치료술 역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기에 사실 인간복제를 위한 기술적인 준비는 완료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이 인간복제를 뚜렷이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마저도 생명공학육성법으로 생명공학을 국가적 차원에서 오히려 지원하겠다는 취지의 법률인 만큼 인간복제금지를 강력히 규정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여기에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생명공학을 장려하고 있으며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온갖 힘을 쏟는 오늘의 상황이 우리나라가 인간복제공장을 차리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하는 인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 인간배아복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매우 필요한 작업이라고 여겨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인간배아복제의 과정에 관해 언급하고 이어서 이의 윤리적 문제점에 관해 피력하고자 한다.
2. 인간배아복제란?
인간복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핵을 제공하는 원본 인간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인간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하는데, 인간배아복제는 그와 다른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인간복제는 엄밀히 말하면 인간배아복제인데, 복제된 개체의 생존을 배아상태로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낙태한다기보다 태아를 낙태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덜 끔직한 것처럼 인간복제보다 배아복제라는 표현이 인간의 죄의식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사용되리라 짐작된다.
인간복제는 크게 둘로 나눠 생식용 개체복제와 치료용 배아복제로 나누는데, 인간배아복제는 주로 질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추출에 있으므로 치료용 배아복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이를 생식용으로 바꾸어 개체를 복제해낼 수 있으므로 이 둘을 구별하여 관리하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복제기술 역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생식세포의 복제와 체세포의 복제가 그것이다. 생식세포는 분화전능이 있어서 뇌세포나 유방세포로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인데 반해, 체세포는 뇌세포, 유방세포와 같이 세포의 특성이 이미 결정되어진 세포를 말한다. 생식세포의 복제는 수정란을 사용하는데 수정란이 8세포로 분열하였을 때 세포를 감싸고 있는 막을 단백질 분해효소로 녹여 세포를 각각 분리한 후 여기서 핵을 추출한 다음, 이를 핵을 없애버린 난자와 결합시키면 8개의 새로운 수정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반복하며 아울러 수정란을 냉동보관한다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수만큼의 개체를 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체세포의 복제는 생식세포 대신 성장한 체세포를 이용하는 것으로 체세포의 핵을 탈핵난자에 전기충격을 이용하여 핵치환시킨 후 세포가 분화되도록 하는 것이다.(5)
3. 생명의 시작은 언제 부터인가?
생명의 시작에 관해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는데, 수정순간을 시작으로 보느냐, 착상, 심박동개시, 뇌파 작동 시점, 자체 생존가능 시점, 분만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의학적으로 생명의 시작은 어느 순간일까? 정자가 여성의 질에 들어가면 20분 내에 나팔관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서 난자를 만나 결합하게 되는데, 하나의 정자가 난자에 들어가면 수정란이 되면서 순식간에 막이 형성되어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기전을 작동한다. 이 수정란에는 정자의 23개의 염색체와 난자의 23개의 염색체가 합쳐져 이미 46개의 인간의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지만 독특하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며 또한 완전한 개체이다. 이 수정란에 영양분과 산소만 계속 공급되면 성장발육하여 성인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8번 세포분열할 무렵 자궁에 착상하게 되고, 41회 세포분열 할 때 쯤이면 바깥 세상을 구경하게 되며, 45회 세포분열하면 어느새 어른이 되는 것이다.(6) 즉 수정란 이후의 과정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므로 어느 한순간을 선을 그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시점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수정 시점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이 가장 의학적이라 생각된다.
4. 인간배아복제의 윤리적 문제점
생명의 시작이 수정 시점부터라는 의학적 논거를 받아들일 때, 인간의 가치는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은 시기에 의해 변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정란과 배아가 가치에서 차이가 날 수 없으며, 배아와 태아가 생명의 존엄성에서 구별될 수 없으며, 신생아와 영아가 인간의 가치적 관점에서 차이를 둘 수 없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정부가 14일 이전의 전배아(배아를 자신의 목적에 따라 구분하였음)에 대한 실험을 사실상 인정하였는데, 이는 수정 후 14일이 세포덩어리에서 조직화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13일과 14일은 구별될 수 없으며, 14일과 15일 역시 이전과 이후를 생명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변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14일을 생명의 기점으로 잡는 행위는 논리적이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으며, 인간의 생명이 정부의 결정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게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또한 배아복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인간배아들이 손상받으며 상당부분의 배아들은 폐기처분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인간들이 현미경 하에서 갖은 폭력을 당하며 무참히 살해되는 셈이다. 생명윤리학자들이 21세기를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로 예고대로 항거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배아는 거대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복제된 인간배아를 이용하여 암과 같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을 개발해낼 수 있으며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장기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식분야에 획기적인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지닌 여분의 인간을 냉동보관함으로 언제든지 이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도덕적 지위를 지닌 존재로 다른 무엇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인간은 그자체로 목적적 존재이기에 아무리 그 혜택이 크다 할지라도 수단적 존재로 여겨져서는 안될 것이다. 당장의 눈 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고귀함이 짓밟힌다면 이는 오히려 인류역사의 퇴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배아복제는 인간개체의 정체성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키며,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아울러 그동안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부부간의 유성생식을 통해 자녀를 출산해 오던 전통이 무너져 내리고, 남성과 여성이 필요치 않는 무성생식이 가능함으로써 인간사회의 버팀목이었던 가정마저도 여지없이 파괴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이러한 인간배아복제를 단지 과학적 행위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며, 사회학적, 인류학적, 철학적 및 종교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며 이를 위한 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복제실험은 소영웅주의 내지 실용주의적 이기주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5. 맺는 말
식량자원의 보다 획기적인 확충과 우량품종의 보존과 번성을 위해서라면 복제기술의 활용은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으며 멸종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보존하는 방편으로도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심장판막수술에 사용되는 돼지의 판막을 다량 얻기 위해 적합한 돼지의 다량 복제가 질병퇴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물 복제에 있어서도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고 환경의 변화로 인한 대혼란이 올 수 있을 것이므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신중히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이러한 실용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인간의 다스림과 경작의 대상이 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과 섬김의 대상일지언정 다스림과 경작의 대상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결코 타인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즉, 복제인간 논쟁의 주된 핵심은 바로 세계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인간을 동물에서 진화되었다고 믿으며, 인간이 생명을 지배하고, 생명 자체의 신성을 부인하고 생명의 질을 중요시하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 세계관 하에서는 복제인간은 얼마든지 해도 되는 과학기술의 하나일 뿐일 것이다.
또 한 가지 과학의 오류는 할 수 있다면 다 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념이다. 무엇인가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핵전쟁으로 인류를 파멸시키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해도 되는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더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윤리의 퇴보일 수 있다.
인간배아복제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신비로운 성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엄청난 불행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성감별을 통한 선택적 분만과 인공유산을 자행하므로 야기되는 숱한 문제들을 경험함으로 인간이 생명을 조절하려고 할 때 치러야 할 가정과 사회의 파괴를 알고 있다. 벌써부터 행해지고 있는 태아실험이나 유전자조작, 원숭이와 인간의 교배실험 등은 인간배아복제로 야기될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서라면 무슨 일도 용납되는 것일까? 윤리를 상실한 과학은 마치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질주해 달려 내려가는 덤프트럭과도 같다. 우리는 곧 닥쳐올 낭떠러지의 비참한 말로를 모른 채 덤프트럭 위에서 환호를 지르는 아이들처럼 인간복제를 가능케 한 과학의 승리를 내심 자랑스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우주
진화론은 계속해서 질서가 잡혀가고 있는 우주, 발전적인 우주를 가정하고 있다. 제일 처음 대폭발에 의해서 우주가 만들어질 때는 사실상 가장 무질서한 상태였다. 그런데 200억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은하단, 은하계, 태양계, 지구라는 식으로 질서가 잡혀가는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열역학의 법칙들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 주장일까? 과연 열역학의 법칙은 우리에게 어떤 우주를 말해주고 있고, 그것은 창조주에 대해서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열역학의 3법칙들 가운데서 오늘의 논의에 필요한 것은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라고 불리우는 제1법칙과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불리우는 제2법칙이다. 이 두 법칙을 합쳐서 한마디로 묘사해 본다면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데 비해서, 시간이 경과하면서 사용가능한 에너지, 즉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모두 일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질서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에너지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더 이상 창조되지 않고 있는 우주의 에너지가 계속해서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고 있다고 열역학의 법칙이 말하는 바는 진화론의 질서를 증가라는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적 사고는 가장 기본적인 과학의 법칙과 근본적으로 어긋나고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 우리가 늘상 경험하듯이 인간이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어떠한 건축물이나 기계들을 보더라도 계속 공을 들여 유지 보수를 하지 않는한 자꾸 낡아지고 부숴지고 무질서해지는 것이 법칙이다. 그래서 방치해 두는데 점점 질서가 잡히고 새로워지고 정교해지는 것은 이 세상에 결코 없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지배하는 것이 열역학의 제2법칙이다. 자연의 모든 과정은 엔트로피라는 열역학적인 양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엔트로피의 법칙은 에너지의 투입에 의하여 부분적으로는 역전될 수도 있다. 바로 생명체가 성장하며 생명체 내부의 질서를 유지해 가는 과정에서 그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생명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와 물질을 공급받음으로써 그를 희생으로 삼아서 자신의 내부적 질서를 유지 발전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주변의 에너지와 물질이 생명체 내부로 빼앗김으로 생기는 엔트로피의 증가는 생명체 내부에서의 엔트로피 감소분보다 훨씬 커서 거시적으로 보면 열역학 제2법칙은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생명체에서처럼 그 에너지를 적절하게 일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어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그러한 식의 에너지 투입은 오히려 더 큰 무질서를 산출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어떤 건물에 폭탄이 떨어졌을 경우 매우 많은 양의 에너지가 건물에 주어지는 것이지만, 실상은 폭발의 결과 그 건물은 엄청나게 더 무질서한 상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대폭발 이론이라는 것은 폭발이 있어났는데, 거기서 지금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의 폭발이 일어났던 우주에 질서를 산출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변환장치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는 어떤 인쇄소에서 폭탄이 터진 결과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 완벽하게 인쇄되어 제본되어 나왔다고 설명하는 것 만큼이나 불합리한 이론이다.
결국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피해가기 위해서 우주 자체에 생명과 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즉 '자기-조직하고 있는 우주'라는 용어로서 우주 자체는 자율적이고 자충족인 힘이 있어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바로 우주라는 물질계 자체에다 신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주 자체가 영원히 존재하며,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자기를 창조적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바로 신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피조물에 불한 우주를 신격화하고 있으니 우상숭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열역학의 두 법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 없이는 이 우주의 존재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의 에너지는 결코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있고, 그 에너지들이 점차로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결국 최초에 에너지가 창조되었을 때 모든 에너지가 쓸모있는 에너지였던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우주는 영원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분명히 시작이 있었고, 그 시작을 가능케한 창조주의 창조행위가 없이는 열역학의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지금의 우주의 존재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그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는 열역학적인 평형상태, 즉 열역학적인 죽음의 상태를 향해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이 우주에 시작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만큼,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우주 역사의 끝이 도래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한 셈이다. 이러한 상태를 다시 영원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뿐이다.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진화론적인 사고에서는 엄연히 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열역학의 법칙을 왜곡되게 해석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이 우주를 신격화하고 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알파와 오메가, 즉 역사의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써 열역학의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3/a31/a31c4.htm
출처 - 창조지, 제 100호 [1996. 11~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3
참고 :
창조과학과 에너지 공학
인류는 에너지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여 사용해 왔다. 석기시대의 발달한 사냥 기술이 수렵자원의 고갈을 초래하자, 농경문화와 이에 적합한 효율적인 에너지 기구인 신석기 시대를 낳았다. 로마시대에는 정복을 통해 획득한 막대한 잉여 에너지인 노예들의 육체노동력의 한계가 오자, 수력을 이용한 분쇄 기술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활용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난방으로 사용하던 목재 에너지의 고갈을 경험한다. 영국 등지에서 땅속의 검은흙을 연료로 사용하게 되고, 시기 적절하게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다. 이제 인류는 땅속에 간직되어 있던 화석연료의 고갈과 이들 사용으로 인한 환경의 악화의 이중고를 겪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물질에서 바로 에너지를 획득하는 핵에너지의 사용은 방사능이라는 위험요소를 던져주고 있다.
현재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고대시대의 80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살던 귀족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과소비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에너지 문제는 소수의 과학자 집단에서 논의되는 고유한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에너지의 기본법칙
열로부터 유용한 일을 얻어내고자 하는 노력은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 1법칙의 장미빛 향기를 맡으며 끊임없이 시도되었으나,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 늘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공학은 한마디로 열적 자원을 개발하고, 유용한 일을 얻어내는 기구를 개발하되 이를 극대화하며 환경오염이 되는 엔트로피의 발생을 극소화하고자 하는 공학이다. 이 공학의 한 끝자락은 오늘날의 고도 문명사회를 유지하는데 절대 필요한 유용한 일의 개발이라는 실용적인 부분에 걸쳐 있으나, 다른 한 끝자락은 질서와 무질서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 부분은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 등장하여 진화론을 궁지에 빠지게 하던 아주 믿음직한 이론이었다.
질서와 무질서
우리의 언어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표현하면, 어떻게 무질서에서 질서가 나왔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인류가 알고자하는 고상한 몇 안 되는 문제중에 지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보이는 생물계의 질서를 논하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를 떠나서도, 우리는 종종 창틀에 낀 성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양, 들의 꽃, 가뭄 때 갈라진 논바닥의 균열, 마구잡이로 종이를 꾸겨 놓은 듯한 산하(山河)의 뻗어 달림, 가을 하늘에 촘촘히 흩뿌려진 새털구름 등을 바라보면서도 질서와 무질서를 생각하게 되고 시민들은 노래할 것이다.
최근, 과학의 발달은 질서와 무질서의 해석이라는 명제에 드디어 발을 딛기 시작했다. 기상학자인 로렌츠가 발견한 대기순환의 간단한 비선형 동역학 방정식이 보여주는 혼돈(chaos)의 해석을 통해, 기묘한 끌개(strange attractor)의 해석은 결정론적 혼돈이라는 개념을 던져 주었다. 우리가 경험한 많은 종류의 혼돈 중에 상당수가 그 배후에 매우 간단한 결정론적인 지배 방정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사실 뉴튼 역학 이후의 결정론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존재를 초기조건으로 제한하는 오류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chaos의 특징인 '재빠른 초기조건의 망각'은 초기로 제한된 하나님을 재빨리 망각하는 자연을 묘사하여 지극히 위험한 세계관을 던져줄 소지가 있다.
또 다른 도전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으로 대표되는 브뤼쉘 연구소팀의 주장인 자기조직(Self organization)에 관한 연구이다. 이들은 선형열역학에서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무질서의 증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들 연구가 완벽한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들을 조합하면 지극히 진화론적인 사고의 일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간섭하시는 하나님
위의 사고과정에 하나님의 설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대류 운동을 보기를 들자. 이것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도 즐겨 그의 이론에 예로 드는 것이다. 아침마다 커피물을 덮히다 보면 물이 빙빙 도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대류이다. 물이라는 분자는 지능이 없으므로 협동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열이 가해지면 제멋대로 충돌할 것이다. 이러한 멋대로 충돌에 의한 에너지의 전달을 전도(conduction)이라 부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도는 혼돈의 상태이고 대류는 질서의 상태이다. 왜냐하면 우리 육안으로 흐름을 관찰하려면 적어도 1몰 정도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능없는 1몰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할 확률은 1 / 6.023×1023 이다. 따라서 이것은 기적이다. 우리는 매일아침 기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이 거의 0의 확률을 1의 확률로 바꾸었을까? 그것은 물분자 하나하나에 간섭한 중력이다. 이 간섭자로 말미암아 물분자는 멋대로 충돌하기 보다 단체행동을 한 것이다.
최근 Yorke 등의 과학자는 혼돈을 제시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것은 미래 계통공학(system engineering)에 큰 공헌을 할 것이 기대된다. 혼돈을 간직한 계통을 설계하고 이를 제어하므로, 하나의 계통에서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어라는 것은 목표치와 현 상태의 오차를 감지하고 이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행동이다. 즉 끊임없는 간섭이 혼돈계를 질서계로 바꾸어 준다. 일리아 프리고진은 자신의 이론에 제시한 비평형 엔트로피의 작용을 이 혼돈의 제어라는 언어로 다시 표현해야 마땅하다.
제어를 하고자 하는 경우, 원하는 목표치(최적상태)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간섭해야 한다. 따라서 혼돈에서 질서의 창출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즉, 질서의 상태를 설계하셨고 이것이 혼돈으로 갖지 않도록 끊임없이 간섭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유용한 일의 획득
문제를 돌려서,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 문제인 유용한 일의 획득이라는 공학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에너지 변환 시에 우리는 엔트로피를 발생시키게 되고, 이것은 지구환경을 심히 훼손시킨다. 따라서 에너지 소비절약과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 개발이 급선무이다.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는 결국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의 생산이 작은 방향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큰 영향을 받는다.
에너지 형태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
중 력
회 전 에 너 지
궤 도 운 동 에 너 지
핵 반 응
천 체 의 내 부 열
태 양 관 선
화 학 반 응
지 구 폐 열
마 이 크 로 파 우 주 선
0
0
0
10-6
10-3
1
1-10
10~100
104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중력, 회전에너지, 궤도 운동에너지 등은 엔트로피 생성이 무시할 만 하다. 이 부분은 수력발전의 경우와 같이 중력과 회전에너지의 결합으로 구현되었다. 큰 저수지의 필요로 주변의 기후 변동과 수몰지역 문제가 있고, 거의 개발한 곳을 다 개발한 상태여서 청정에너지의 개발 여지가 많지 않다.
핵반응을 이용한 에너지는 핵분열과 핵융합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안전성의 증대가 관건이 되고 폐기물의 경우는 다른 에너지 변환 장치에 비해 작은 편이다.
태양열의 이용은 경제성 문제가 크고 단위 면적당 에너지 집적률이 낮아,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다. 풍력의 경우 돌풍성 바람에 대한 대책과 회전익에서 발생하는 소음공해 등의 해결이 필요하다. 간략히 살펴보아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미래의 에너지는 중력?회전에너지?궤도 운동에너지가 조합된 특이한 변환장치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궤도 운동의 경우. 이체문제(two-body problem)의 경우는 궤적을 예측할 수 있으나,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만 되어도 질량의 비율에 따라 카오스적 궤도가 형성된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해?달?지구 그리고 그 속에 넣을 에너지 변환기구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이러한 엔트로피의 생성을 최소화하는 기구의 개발과 함께,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가이아 이론과 같이 지구를 숭배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적인 사고를 물리칠 책임 또한 막중하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3/a31/a31c2.htm
출처 - 창조지, 제 90호 [1994. 4~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
참고 :
지놈프로젝트에 대하여 5 - 그림으로 보는 인간 지놈프로젝트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75
참고 :
창조과학회 생명복제 반대 성명서
2002년 12월 27일 복제인간이 최초로 탄생했다는 보도는 염려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직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 인간복제가 실현됐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미 기술적으로 인간복제가 가능하다고 예견되어 왔고, 인간복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크로노이드 회사에 의해 인간복제를 성공했다고 발표하였기 때문에, 이런 발표가 인간복제 문제를 확실하게 금지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복제는 난자의 핵을 체세포의 핵으로 바꾸는 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수정란의 형태를 만들고,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동물복제 실험에서 나타났듯이 이런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출산할 수 있는 확률이 낮으며, 출산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인간복제는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시도 자체가 정상적인 가정의 기능을 파괴하고, 인간을 다른 사람의 소유나 이용의 대상이 되어버리게 할 수 있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이다. 또한 인류의 다양성과 독특성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정보를 반반 씩 받아 그 어떤 사람도 갖지 못한 새로운 유전정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데, 복제 방법의 확산은 결혼제도, 가정의 파괴 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 자체에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인간복제는 천부적 인권파괴 내지 인간성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한국창조과학회는 박사 및 대학교수 300명을 포함한 1500여명의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아래와 같이 천명한다.
2002. 12. 31. 한국창조과학회
*관련기사 : 창조과학회, 복제 인간 반대 성명 (2003. 1. 6. 크리스천투데이)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66513
인간배아복제, 과연 윤리적인가?
박상은
1. 들어가는 말
97년 봄, 영국 로슬린연구소에서 이안 윌멋 박사에 의해 돌리라는 양이 처음 복제된 이후 인간복제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8월 23일 과학자들이 인간의 수정란을 연구하는데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새로운 인간배아세포복제 연구지침을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선천적 기형과 파킨슨병, 각종 암과 당뇨병 환자들이 이 연구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며 새 기준은 시험관수정을 통해 얻은 배아에 한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영국정부는 그보다 앞선 8월 16일 의학연구 목적에 한해 수정 후 14일 이내의 초기 인간배아를 복제하는 치료용 복제연구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98년 서울대 황우석교수에 의해 송아지 영롱이가 복제되면서 동물복제가 본격화되었고,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경희의대에서 초기인간복제실험이 성공되었다는 보고로 전 세계적인 논란을 야기시켰고, 라엘리언 교도들이 강남에 사무실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인간복제신청을 접수하여 현재 9명의 한국인이 이미 복제신청을 마치고 조만간 인간복제에 들어가겠다는 보도를 접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인간복제논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황우석교수가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복제를 통해 특허를 출원한 사실이 보도되었고, 마리아불임클리닉의 연구소가 시험관아기 시술에 사용되고 남은 냉동배아를 이용하여 배아간세포를 분리하였다는 뉴스는 인간배아복제 논쟁을 더 뜨겁게 가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제기술은 세계 5위권 안에 이미 들어섰으며, 이와 유관된 불임치료술 역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기에 사실 인간복제를 위한 기술적인 준비는 완료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이 인간복제를 뚜렷이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마저도 생명공학육성법으로 생명공학을 국가적 차원에서 오히려 지원하겠다는 취지의 법률인 만큼 인간복제금지를 강력히 규정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여기에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생명공학을 장려하고 있으며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온갖 힘을 쏟는 오늘의 상황이 우리나라가 인간복제공장을 차리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하는 인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 인간배아복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매우 필요한 작업이라고 여겨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인간배아복제의 과정에 관해 언급하고 이어서 이의 윤리적 문제점에 관해 피력하고자 한다.
2. 인간배아복제란?
인간복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핵을 제공하는 원본 인간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인간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하는데, 인간배아복제는 그와 다른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인간복제는 엄밀히 말하면 인간배아복제인데, 복제된 개체의 생존을 배아상태로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낙태한다기보다 태아를 낙태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덜 끔직한 것처럼 인간복제보다 배아복제라는 표현이 인간의 죄의식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사용되리라 짐작된다.
인간복제는 크게 둘로 나눠 생식용 개체복제와 치료용 배아복제로 나누는데, 인간배아복제는 주로 질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추출에 있으므로 치료용 배아복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이를 생식용으로 바꾸어 개체를 복제해낼 수 있으므로 이 둘을 구별하여 관리하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복제기술 역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생식세포의 복제와 체세포의 복제가 그것이다. 생식세포는 분화전능이 있어서 뇌세포나 유방세포로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인데 반해, 체세포는 뇌세포, 유방세포와 같이 세포의 특성이 이미 결정되어진 세포를 말한다. 생식세포의 복제는 수정란을 사용하는데 수정란이 8세포로 분열하였을 때 세포를 감싸고 있는 막을 단백질 분해효소로 녹여 세포를 각각 분리한 후 여기서 핵을 추출한 다음, 이를 핵을 없애버린 난자와 결합시키면 8개의 새로운 수정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반복하며 아울러 수정란을 냉동보관한다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수만큼의 개체를 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체세포의 복제는 생식세포 대신 성장한 체세포를 이용하는 것으로 체세포의 핵을 탈핵난자에 전기충격을 이용하여 핵치환시킨 후 세포가 분화되도록 하는 것이다.(5)
3. 생명의 시작은 언제 부터인가?
생명의 시작에 관해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는데, 수정순간을 시작으로 보느냐, 착상, 심박동개시, 뇌파 작동 시점, 자체 생존가능 시점, 분만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의학적으로 생명의 시작은 어느 순간일까? 정자가 여성의 질에 들어가면 20분 내에 나팔관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서 난자를 만나 결합하게 되는데, 하나의 정자가 난자에 들어가면 수정란이 되면서 순식간에 막이 형성되어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기전을 작동한다. 이 수정란에는 정자의 23개의 염색체와 난자의 23개의 염색체가 합쳐져 이미 46개의 인간의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지만 독특하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며 또한 완전한 개체이다. 이 수정란에 영양분과 산소만 계속 공급되면 성장발육하여 성인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8번 세포분열할 무렵 자궁에 착상하게 되고, 41회 세포분열 할 때 쯤이면 바깥 세상을 구경하게 되며, 45회 세포분열하면 어느새 어른이 되는 것이다.(6) 즉 수정란 이후의 과정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므로 어느 한순간을 선을 그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시점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수정 시점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이 가장 의학적이라 생각된다.
4. 인간배아복제의 윤리적 문제점
생명의 시작이 수정 시점부터라는 의학적 논거를 받아들일 때, 인간의 가치는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은 시기에 의해 변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정란과 배아가 가치에서 차이가 날 수 없으며, 배아와 태아가 생명의 존엄성에서 구별될 수 없으며, 신생아와 영아가 인간의 가치적 관점에서 차이를 둘 수 없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정부가 14일 이전의 전배아(배아를 자신의 목적에 따라 구분하였음)에 대한 실험을 사실상 인정하였는데, 이는 수정 후 14일이 세포덩어리에서 조직화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13일과 14일은 구별될 수 없으며, 14일과 15일 역시 이전과 이후를 생명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변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14일을 생명의 기점으로 잡는 행위는 논리적이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으며, 인간의 생명이 정부의 결정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게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또한 배아복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인간배아들이 손상받으며 상당부분의 배아들은 폐기처분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인간들이 현미경 하에서 갖은 폭력을 당하며 무참히 살해되는 셈이다. 생명윤리학자들이 21세기를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로 예고대로 항거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배아는 거대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복제된 인간배아를 이용하여 암과 같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을 개발해낼 수 있으며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장기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식분야에 획기적인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지닌 여분의 인간을 냉동보관함으로 언제든지 이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도덕적 지위를 지닌 존재로 다른 무엇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인간은 그자체로 목적적 존재이기에 아무리 그 혜택이 크다 할지라도 수단적 존재로 여겨져서는 안될 것이다. 당장의 눈 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고귀함이 짓밟힌다면 이는 오히려 인류역사의 퇴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배아복제는 인간개체의 정체성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키며,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아울러 그동안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부부간의 유성생식을 통해 자녀를 출산해 오던 전통이 무너져 내리고, 남성과 여성이 필요치 않는 무성생식이 가능함으로써 인간사회의 버팀목이었던 가정마저도 여지없이 파괴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이러한 인간배아복제를 단지 과학적 행위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며, 사회학적, 인류학적, 철학적 및 종교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며 이를 위한 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복제실험은 소영웅주의 내지 실용주의적 이기주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5. 맺는 말
식량자원의 보다 획기적인 확충과 우량품종의 보존과 번성을 위해서라면 복제기술의 활용은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으며 멸종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보존하는 방편으로도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심장판막수술에 사용되는 돼지의 판막을 다량 얻기 위해 적합한 돼지의 다량 복제가 질병퇴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물 복제에 있어서도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고 환경의 변화로 인한 대혼란이 올 수 있을 것이므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신중히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이러한 실용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인간의 다스림과 경작의 대상이 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과 섬김의 대상일지언정 다스림과 경작의 대상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결코 타인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즉, 복제인간 논쟁의 주된 핵심은 바로 세계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인간을 동물에서 진화되었다고 믿으며, 인간이 생명을 지배하고, 생명 자체의 신성을 부인하고 생명의 질을 중요시하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 세계관 하에서는 복제인간은 얼마든지 해도 되는 과학기술의 하나일 뿐일 것이다.
또 한 가지 과학의 오류는 할 수 있다면 다 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념이다. 무엇인가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핵전쟁으로 인류를 파멸시키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해도 되는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더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윤리의 퇴보일 수 있다.
인간배아복제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신비로운 성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엄청난 불행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성감별을 통한 선택적 분만과 인공유산을 자행하므로 야기되는 숱한 문제들을 경험함으로 인간이 생명을 조절하려고 할 때 치러야 할 가정과 사회의 파괴를 알고 있다. 벌써부터 행해지고 있는 태아실험이나 유전자조작, 원숭이와 인간의 교배실험 등은 인간배아복제로 야기될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서라면 무슨 일도 용납되는 것일까? 윤리를 상실한 과학은 마치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질주해 달려 내려가는 덤프트럭과도 같다. 우리는 곧 닥쳐올 낭떠러지의 비참한 말로를 모른 채 덤프트럭 위에서 환호를 지르는 아이들처럼 인간복제를 가능케 한 과학의 승리를 내심 자랑스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출처 - 성산생명윤리연구소
링크 - http://www.bioethics.or.kr